내 묘비에 새길 문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인생 헛 살았다!"
나름 고고하고 철학적이고 정의롭고 쿨한 삶을 살려는 바둥거림이 얼마나 추한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 쿨하지도 약삭빠르지도 못한 평균이하의 사고와 육체로 감상적이고 소모적, 구걸적 이기심으로 형성된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볼 능력도 없이 이민자로 던져짐을 화려한 변신으로 그리고 쿨한 히피 또는 노마드 혹은 여행자의 여행길에서의 감성으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민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토종인의 사회성으로 이민자의 삶을 살아내려 하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문명의 이기로 극복할수 있을거라는 막연함과 믿음에 기댄체 '살려는 드린다'는 속삭임에 살아는 있었다.
문득 머리를 띵 때리는듯 가슴을 퍽 때리는 형과의 전화통화가 헛 산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그래 헛 살았다. 그 헛헛 함이 너무도 공허하다.
무엇보다 관계의 공허함이 가장 크다.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은채 이민자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가장 크지만 그후의 삶은 새로웠어야 했다.
버린것 놓친것 끊을것 이을것들을 구분짖지 못한체 이런것이 정체성의 혼란 이라고 하는것인가?
어린 아이에게나 일어나는 정체성 문제 인줄만 알았는데 모
든것을 새로이 규정짖지 못하고 사는 이민자에게는 겪어야 하는 혼란일수 있겠다.
15년이라는 이민자의 삶, 살아남았음 만을 감사하고 대견하다 자위하는 얼척없음
감성과 현실을 구분못하고 "뭣이 중헌디"!?" 물음에 답할 능력도 없이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바꾸었음에도 미국인으로 살아야하는지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조차도 결정하지 못하고
결단과 선택 인간으로서 살아가기위해 필요한 결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그저 헛산 인생이랄지라도
쓸쓸한 죽음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지금처럼 살면 된다. 아무것도 미련두지 말고 애뜻함에 가슴저려하지 말고
인생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떤 생을 선택할것인가. 또는 어떤 죽음을 선택할것인가
이제 먹고살만 한가보다. 월세와 쌀 걱정보다 관계 걱정을 하고 있는걸 보니
왜 월세와 쌀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도 관계를 제대로 맺지못하고 살기 때문이 었다.
유아적 사고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소년적 사고로 친구관계을 유지하고 살아온 중년의 전형적 모습인지 모른다.
아직도 혼란스럽다. 아니 선택하지 못하겠다.
버려야할 감성들. 관계들 어떻게 맺고 끊어야 헛헛한 인생이 되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