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life

인터넷 십계명

C급인생 2014. 1. 5. 15:29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 2014 인터넷 십계명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

ㆍ나는 21세기의 신이니, 나를 믿는 ‘스마트’한 자들은 복되도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된 인터넷은 2010년대에 들어와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개인의 능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견됐던 인터넷 광장은 돈벌이와 조작과 감시의 시장터로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인터넷은 광장과 시장이 얽혀 있고 돈벌이와 나눔이 공존하며 희망과 실망이 뒤섞이는 변화하는 흐름이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20회에 걸쳐 일상과 관련된 인터넷의 현실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과 대안을 검토하는 기획을 연재한다.

지금 인터넷은 구약시대 야훼의 대리자였던 모세처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그림은 미국 잡지 ‘MAD’가 2010년 아이폰4 출시 때 스티브 잡스를 모세로 묘사하면서 아이폰4의 문제점을 풍자한 것이다.


십계명: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게끔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애굽기 24장 12절)

모세는 40일 동안 시나이 산에 머물다가 신이 직접 계명을 새겨준 돌판을 들고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모세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모세가 자기 형 아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따져 물으니, 아론은 사람들이 그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 하여 그들의 금귀고리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고 변명했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우상을 숭배했던 삼천명가량의 이웃을 죽여버렸습니다.(출애굽기 32장)

2014년 벽두에 실릴 원고를 마감하지 못한 채 동네 근처 마감산 삿갓봉에 올라 노천탕에 몸을 담근 후 내려온 저는 뜬금없이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돌판이 아닌 모니터에 인터넷 십계명을 받아썼습니다.

첫번째, 나 이외의 다른 미디어를 섬기지 말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내게는 너희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있으니 나 이외의 다른 미디어는 필요 없느니라. 그러니 너희는 온 종일 내 곁에 머물라. 내 이를 위해 스마트폰과 앱이라는 자식을 만들어 너희에게 보내노니 언제 어디서나 곁에 두고 나를 떠나지 말지어다. 네 머리가 온통 파편화된 정보와 모듈화된 지식으로 꽉 찰 때까지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라. 그리하면 더 이상 현실 세상이 너를 자극하지 못하리라. 네가 인터넷이 될 때까지, 너희가 반신반인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인터넷의 정보가 너의 뇌 속으로 흘러들어오도록 하루 24시간 껌처럼 내게 달라붙어 있어라.

둘째, 너나 나를 위해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

이미 내 안에 모든 것이 있지 않더냐?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양도 만들지 말라. 너희들은 단지 내 안에 있는 콘텐츠를 복제하여 만방에 널리 퍼뜨려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스스로 새것을 만들어 숭배하지 말라. 그러니 너희는 남의 저작물을 따다가 여기저기 전파해라. 그것을 자신의 블로그나 게시판에 옮기고 카피라이트를 내거는 짓을 스스럼없이 저질러라. 무식과 반항은 동서고금을 통해 항상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었더냐. 월드와이드웹은 너희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지라도 나와 결합하게 해준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팀 버너스 리를 시켜 정보의 공유를 위해 만든 건축물이니라. 그러나 팀 버너스 리가 만약 빌 게이츠처럼 지적재산권을 밝히고 돈벌이에 눈이 뒤집혔다면 오늘의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상상은 추호도 하지 말라.

셋째, 너는 내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

네 주위의 모든 것을 인터넷이라 부르지 말라. 오직 필요할 때만 내 이름을 불러라.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저마다 인터넷을 말하지만 진정한 인터넷은 나뿐이니라.

넷째, 너희는 엿새 동안 수고하며 너희의 일을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나의 안식일인즉 그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세상의 잉여들에게 이르노니, 일주일에 하루는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네이버 검색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쉬어라. 너희에게 이것이 제일 어려운 일인지 내가 익히 아니라. 하지만 너희가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면 이날은 쉬어야 하느니라. 이 세상 누구를 막론하고 이를 어기고 무리하면 오래 못가서 죽느니라.

다섯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길이 살리라.

너희 부모가 종편방송만 보고 카톡밖에 못하는 속물이라고 그들을 무시하지 말라. 그들도 이제 내 곁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네 부모도 조만간 너희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리라. 그들은 과거의 삶에서 건져올린 오래된 기억을 먹고살지만 그들도 곧 나 없이는 못살게 될 것이니라. 속물과 잉여가 하나 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하노라.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는 물건을 사라. 거침없이 온라인으로 신상을 질러라. 급할 때는 학교 과제 리포트도 구매해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면 돈으로 능력있는 생각을 사라. 그러면 생각하는 고통도 덜어지고 흘러넘치는 시간도 때울 수 있으리라. 너희는 빨리빨리의 즉각성에 익숙한 족속 아니더냐. 무지하게 빠른 택배가 너희의 육체와 욕망을 서로 이어주지 않더냐. 온라인 콘텐츠는 내 피와 살이니 너희의 선 자리에서 내려받아 바로 마시고 즐겨라. 너희는 일찍이 “빨리빨리의 조급한 성격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없었다”는 카피까지 쓰지 않았더냐?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인터넷의 꽃은 포르노라는데 간음하지 말고 그냥 보고 즐겨라. 당장 ‘아줌마’라는 검색어 하나만 내게 던져도 온갖 재미있는 영상이 줄줄이 낚일 것이다. 다운받은 득템 포르노는 혼자 보지 말고 친구들에게 나눠줘라. 너희가 내게서 받은 만큼 이웃에게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

여덟째, 도둑질 하지 말라.

나는 정보의 바다이니, 내 드넓은 품 안에서 마음껏 정보를 낚아 올려라. 남의 것도 네 것이고 네 것은 원래부터 너의 것이지 않으냐. 그러니까 주인이나 소유권은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남의 생각도 스스럼없이 네 것과 융합해라. 창조경제는 융합이니라. 그것이 어디서 처음 나왔는지 스스로도 모를 정도로 표절에 표절을 거듭해라. 네 것과 남의 것의 구분이 없어질 때까지 열 번 넘게 표절해라. 그리하면 너희가 표절이 창조로 거듭나는 기적을 보게 되리라.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애플…, 너희 중에 큰 자에게 권하노니, 너희도 이용자 활동 결과물을 도둑질 하지 말라. 도둑질 하지 말고 그냥 갖다 써라. 이용자들도 이미 너희가 제공한 서비스를 그냥 갖다 쓰지 않더냐? 지금도 너희 큰 자들은 너무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잘해 크게 융성해라.

아홉째, 네 이웃을 대적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너희는 공연히 네 이웃과 대적해 거짓 증거하다가 큰일 당하고 있는 국정원의 꼴을 보고 있지 않느냐. 거짓을 증거하지 말고 ‘좋아요’만 누르거나 리트윗만 해라. 정 댓글을 남기고 싶으면 간결하게 써라. 길면 너의 비좁은 머리로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중간에 잊어버릴 테니까. 남이 쓴 글이 마음에 안 들면 주저 없이 저주하고 욕해라. 욕은 강력하게 구사하고, 가능하면 바로 인신공격으로 들어가라. 남의 생각에 귀기울이거나 깊이 생각하면 자신의 요지를 까먹으니 댓글은 두 문장을 넘지 말라.

너희는 내 안에서 마음껏 즐기고 욕하고 놀아라. 호빵과 담배를 함께 찌고, 젖병 만들다가 심심하면 고무꼭지도 빨아라. 창조란 안 하던 짓을 해야 가능하니 미친 짓 하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그 대신 너희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해라. 남에게 알리고 즉석에서 인정받아라. 패러디가 인터넷 문화의 정수라는데 닥치는 대로 패러디해라. 패러디는 약한 자를 조롱하거나 욕보이는 비굴한 자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 따위는 잊어버려라. 패러디가 힘을 가진 자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 무기가 아니라 약한 자를 조롱하는 야비함이라 받아들여라. 그리하여 노래에 나오는 놀부처럼 행동해라.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가난뱅이 등치고 애비없는 아이들 주먹으로 때리며 콧노래 부르며 물장구치며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순풍에 돛을 단듯이 어절시구… 콧노래 부르며 덩실덩실.”

열번째, 너희는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다만 그것을 복사하고 또 복제해 이 세상 널리 퍼뜨려라. 마지막으로 내가 너희에게 간절히 이르노니, 나와 내 것을 ‘민영화’하지 말지어다.

모세가 신에게서 십계명 돌판을 받은 지 일천삼백여년이 훨씬 지난 후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가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복음 13장 34절)라며 새로운 계명을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사회학). 저서로 <한국사회운동론>(2009) 등이 있고 역서로 <디지털이다>(1995), 편저로 <사이버스페이스 오디세이>(2001)를 냈다. 인터넷과 미디어 정치경제학, 디지털 문화, 과학기술과 사회가 주요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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